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서북 방언 (문단 편집) === 읽어보기 === > 좋다는 양주 얻어마셔 볼수록 우리 술이 낫다는 생각을 더욱 절감하디요. 내 4대조께서 페양(평양)[[평양성#s-3.1|외성]]에서 양조업으로 성공하셨고, 나도 광성고보 나오자 스물 둘에 가업을 물려받았으니께니 지금도 훈훈한 문배 냄새가 코에 배어있읍니다레. 일제 때에도 하루 10섬씩 빚었고 해방 직후엔 평천양조·대동양조 두 군데서 최고로 벌여도 봤디요. >---- > 1988년, 서울에 거주하던, 평양이 고향인 당시 73세의 이경찬이 [[평양시|평양]] [[문배주]]에 대해 언급하는 [[https://news.joins.com/article/2262199|인터뷰]]에서 > 뒤이어 누구의 입에선가, 누가 빈 틈을 냈어? 하는 흥분에 찬 목소리가 들렸다. 그리고 저마다 거 누구야? 거 누구야? 하고 못마땅해 하는 말소리 속에 간난이 할아버지 턱 밑으로 디미는 얼굴이 있어, > “아즈반이웨다레.”[* 아즈바니(아주버니)+웨다(-외다)+레(-그려)로 이루어진 문장이다. 문학계에서는 '아주버님이외다그려', '아주버님이시군요' 정도로 해석한다. 9급 공무원 시험 문제에 출제되어, 많은 사람들이 그 의미를 파악하지 못했다. 대부분 지역에서 '-(으)외다'라는 어미는 이미 사어화되었고, 소설이 쓰일 당시와 달리 북한의 방언에 대한 지식이 줄어 남한 젊은 세대에서 평안도의 '-레'같은 사투리를 아는 사람도 거의 없기 때문이다. 앞서 언급했듯 이 말투는 과거에는 [[https://www.joongang.co.kr/article/1251521#home|대표적인 평안도 말투]]로 인식되었으나 현대에는 거의 아는 사람들이 없다.] > 하는 것은 동장네 절가였다. > 그러자 저편 어둠 속에서 궁금한 듯 큰 동장의, > “[[설명 의문문|어떻게들 됐노?]]" > “[[파투]]웨다” >---- > - [[황순원]], '목넘이 마을의 개'에서 [[평안북도]] 시골의 일제강점기를 묘사한다. 서북간도 이사꾼의 길목이라고 하니 상당히 [[북#s-1|북쪽]]에 있는 마을로 보인다. 현재 북한이 '[[자강도]]'로 관리하는 곳일 수도 있다. 이 소설의 작가 [[황순원]]은 평안남도 출신 실향민이다. > 오가왕에서 살았디오 머. 살아게지구, 나 여기 야들 살 데게지구(돼가지고), 여 오가왕에 왔거던요. 오가왕에 왔는데, 친척들두 없디. 해니깐(그러니까) 곤란했디오 머. 곤란해 게지구, 어, 머 친 친척들 있는 데 찾아와서두. 우리가 잘 쌀어야(살아야) 다 친척들두 좋아하디. 친척들두 우리가 못 쌀구 오니까니, 머 정말 보따리만 게구(가지고) 왔디요 머. 쩌 우리 남동생허구. 남동생 고거 네 살 라구(네 살 나서도), 나 야덜(여덟) 살 라서두, 아주 멀 몰랐디요 머. 기거 오가왕에서 살아게지구. 집은 또 얻어게구(얻어서), 살았지오 머. 긴데 우리 우리 아바지가 또 여기 와게지구 또 병중에 앓았다오(앓았어요). 병두 또 더러운 병이라오(병이라요). 그거 정신 좀 나빠게지구 그런 병 걸레 게지구(걸려 가지고) 고생 많앴시오(많았어요). 그링 거 그 병 걸레 게지구 또 머 정말 굿두 허구. 그런 그러케 해게지구 고테시오(고쳤어요), 우리 아바지. 고테 게지구(고쳐 가지고) 기 대맨(그 다음엔) 농업에 들어게지구(들어서) 농새 했디오 머 내내. 내가 열, 열 살 라서부턴 바배씨오(밥 했어요). >---- > [[평안북도]] [[의주]] 지역의 방언 [[https://m.blog.naver.com/PostView.naver?isHttpsRedirect=true&blogId=inmun_love&logNo=10183842923|#]] > 보통 손전화(휴대전화)로 거래합니다. 이런 식이디요. “선화야! 오늘 저녁 야덟(여덟)시에 출발하는 차(기차)로 활동복이랑 정구(테니스)화랑 쏠(보낼)테니까 역전에 가서 잘 찾으라요. 그리고 금컵(북한 '금컵체육인식료공장'의 상표)에서 나온 과일향 단설기랑 딸기향 알껌이랑 회령 충성이네로 좀 보내달라요. 내가 그쪽에 줄 돈이 있는데 그렇게 처리하면 될끼야. 그럼 부탁하자요.” 손전화가 없으면 장사하기도 힘듭니다. 시장관리원도 챙겨야 해요. 장세(자릿세)는 북한돈으로 받는데 남새(채소) 매대는 500원이고 이문(이윤)이 많은 고기 매대는 2000원입니다. 전 1500원을 냈습니다. 전화비도 그렇지만 매대를 팔때는 중국돈으로, 사용비(자릿세)는 국돈(북한 돈)으로 냅니다. 국가에서 정한 거라 장사를 못 나오는 날도 내야 하니까, 몸이 아파도 쉬지를 못하지요. 그나마 요즘은 [[혜산]]뿐만 아니라 다른 곳에도 내다 팔 수 있으니 그나마 좀 나아졌지요. 관리소에선 수리비를 받으러도 옵네다. 지붕에 금이 갔는지 비가 샌다고 장사치들에게 수리비를 조금씩 내라고 해요. 단속이요? 초코파이 단속이 심합네다. 한때는 그냥 먹고 살라고 봐줬는데, 요즘은 중국을 통해서 들어온 남쪽 물건들을 아야(아예) 철저히 단속합니다. >---- > - [[평안남도]]가 고향인, [[혜산시]]의 시장을 묘사하는 탈북자의 말을 묘사한 중앙일보 기사. [[https://news.joins.com/article/22978014|#]] * 전통적인 평안도 방언을 쓰는 평양 시민을 묘사한 탈북자의 수기: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3345&logNo=220201914108&proxyReferer=|#]] * 평안북도 [[중강진]] 일대(북한 기준 자강도 중강군)의 민속놀이인 달구놀이의 재현: [[http://dbs.donga.com/comm/view.php?r_id=03912&r_serial=01|#]]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